2장. 이상한 나라의 객체
인간의 인지 능력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 개념적으로 경계 지을 수 있는 추상적인 사물까지도 객체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주문과 계좌 이체는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이 쉽게 구분하고 하나의 단위로 인지할 수 있는 개념적인 객체의 일종이다. 즉, 객체란 인간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구별할 수 있는 물리적인 또는 개념적인 경계를 지닌 어떤 것이다.
객체를 상태(state)
, 행동(behavior)
, 식별자(identity)
를 지닌 실체로 본다면 객체의 다양한 특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상태
객체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 시점까지 객체에 어떤 일이 발생했느냐에 좌우된다. 이때 상태를 이용하면 과거의 모든 행동 이력을 설명하지 않고도 행동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다.
상태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복잡성을 완화하고 인지 과부하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숫자, 문자열, 양, 속도, 시간, 날짜, 참/거짓과 같은 단순한 값들은 객체가 아니다. 이러한 값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다른 객체의 특성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하지만 때로는 객체를 사용해 다른 객체의 상태를 표현해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앨리스가 음료수를 들고 있는지 여부는 앨리스라는 객체가 음료라는 객체와 연결돼 있는지 여부로 표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객체의 상태는 단순한 값과 객체의 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객체의 상태를 구성하는 모든 특징을 통틀어 객체의 프로퍼티
라고 한다. 프로퍼티는 일반적으로 변경되지 않고 고정되기 때문에 정적
이다. 하지만 프로퍼티 값
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경되기 때문에 동적
이다.
객체와 객체 사이의 의미있는 연결을 링크
라고 한다. 링크는 객체가 다른 객체를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한 객체가 다른 객체의 식별자를 알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한편 객체를 구성하는 단순한 값은 속성
이라고 한다. 객체의 프로퍼티는 속성과 링크의 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상태는 특정 시점에 객체가 갖고 있는 정보의 집합으로 객체의 구조적 특징을 표현한다.
객체의 상태는 객체에 존재하는 정적인 프로퍼티와 동적인 프로퍼티 값으로 구성된다. 객체의 프로퍼티는 단순한 값과 다른 객체를 참조하는 링크로 구분할 수 있다.
행동
객체지향의 기본 사상은 상태와 상태를 조작하기 위한 행동을 하나의 단위로 묶는 것. 객체는 스스로의 행동에 의해서만 상태가 변경되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객체의 자율성을 유지한다.
상태와 행동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
객체의 행동은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객체의 행동은 상태를 변경시킨다.
행동이란 외부의 요청 또는 수신된 메시지에 응답하기 위해 동작하고 반응하는 활동이다. 행동의 결과로 객체는 자신의 상태를 변경하거나 다른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객체는 행동을 통해 다른 객체와의 협력에 참여하므로 행동은 외부에 가시적이어야 한다.
앨리스가 음료를 마시는 행동은 앨리스 자신의 키를 작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상태를 변경시키고, 자신이 먹은 양만큼의 음료 양을 줄여달라고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이다.
음료수의 양이 줄어들 것인지는 메시지를 수신한 음료수가 결정할 사항이며, 앨리스와는 무관하다. 단지 앨리스는 음료수의 양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요청을 전달할 뿐이다.
=> Alice.drinkBeverage()
, Beverage.drunken(quantity)
현실 세계에서 음료의 상태를 변경시키는 주체는 음료를 마시는 앨리스겠지만, 객체지향 세계에서 모든 객체는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관리하는 자율적인 존재다.
이것이 캡슐화가 의미하는 것이다. 객체는 상태를 캡슐 안에 감쳐둔 채 외부로 노출하지 않는다. 객체가 외부로 노출하는 것은 오직 행동뿐이며, 외부에서 객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행동 뿐이다.
이렇게 상태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행동을 경계로 캡슐화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객체의 자율성을 높인다.
메시지 송신자가 상태 변경을 기대하고 자신의 요구를 메시지로 포장해서 전달하더라도, 수신자가 자신의 상태를 변경하지 않는다면 송신자가 간섭할 수 있는 어떤 여지도 없다.
결론적으로 상태를 잘 정의된 행동 집합 뒤로 캡슐화하는 것은 객체의 자율성을 높이고 협력을 단순하고 유연하게 만든다. 이것이 상태를 캡슐화해야 하는 이유다.
식별자
객체가 식별 가능하다는 것은 객체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특정한 프로퍼티가 객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식별자
라고 한다.
값과 객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값은 식별자가 없지만, 객체는 식별자를 갖는다는 것이다.
값은 불변 상태를 갖는다. 예를 들어 두 개의 1이라는 숫자가 종이 위에 적혀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은 두 숫자가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값이 같은지 여부는 값의 상태가 같은지를 이용해 판단한다. 이처럼 상태를 이용해 두 값이 가은지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을 동등성
이라고 한다. 값의 상태는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시점에 동일한 타입의 두 값이 같다면 두 값은 동등한 상태를 유지한다.
따라서 값은 동등성을 판단하기 때문에 구별을 위한 별도의 식별자가 필요하지 않다.
반면 객체는 시간에 따라 변경되는 상태를 포함하며, 행동을 통해 상태를 변경한다. 이를 가변 상태
를 갖는다고 말한다. 두 객체를 동일하거나 다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식별자를 이용한 동일성 비교
를 하기 때문이다.
객체의 특성
1. 객체는 상태를 가지며 상태는 변경 가능하다.
2. 객체의 상태를 변경시키는 것은 객체의 행동이다.
- 행동의 결과는 상태에 의존적이며 상태를 이용해 서술할 수 있다.
- 행동의 순서가 실행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3. 객체는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유일하게 식별 가능하다.
기계로서의 객체
일반적으로 객체 상태조회는 쿼리
, 객체의 상태 변경은 명령
이라고 한다.
기계의 부품은 단단한 금속 외피 안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기계를 분해하지 않는 한 기계의 내부를 직접 볼 수 없다. 대신 사람은 기계의 외부에 부착된 버튼을 통해 기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쿼리 버튼을 눌러야하며, 내부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명령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것은 객체의 캡슐화를 강조한다. 객체는 버튼으로 제공되는 행동
과, 디스플레이에 출력되는 상태
를 함께 가진다. 그리고 상태는 버튼에 의해 유발되는 행동에 의해서만 접근 가능하다.
행동이 상태를 결정한다.
객체의 상태를 먼저 결정하고 행동을 나중에 결정하는 방법은 설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상태를 먼저 결정할 경우 문제점
캡슐화가 저해된다.
- 상태에 초점을 맞추면, 상태가 객체 내부에 깔끔하게 캡슐화되지 못하고 공용 인터페이스에 그대로 노출되버릴 확률이 높아진다.
객체를 협력자가 아닌 고립된 섬으로 만든다.
객체가 필요한 이유는 애플리케이션의 문맥 내에서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상태를 먼저 고려하는 방식은 협력이라는 문맥에서 멀리 벗어난 채 객체를 설계하게 한다.
객체의 재사용성이 저하된다.
- 상태에 초점을 맞춘 객체는 다양한 협력에 참여하기 어렵다.
객체는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 존재하며, 객체의 행동은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객체가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객체의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
필요한 협력을 위한 행동을 결정한 후, 행동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면서 필요한 상태가 결정된다. 즉, 협력 안에서 객체의 행동은 결국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면서 완수해야 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은유와 객체
객체지향이 현실 세계의 모방
이라는 내용은 잘못되었다. 흔히 객체지향을 현실 세계의 추상화
라고도 하는데, 추상화
란 실제의 사물에서 자신이원하는 특성만 취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추려 핵심만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객체지향 세계는 현실 세계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안에 구현된 상품 객체는 실제 세계의 상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소프트웨어의 상품 객체는 실제 세계의 상품이 하지 못하는 가격 계산과 같은 행동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상품이 실제 세계의 상품을 단순화하거나 추상화한 것이 아니라 특성이 전혀 다른 어떤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방
과 추상화
라는 개념만으로는 현실 객체와 소프트웨어 객체 사이의 관계를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의인화
소프트웨어 객체와 현실 속 객체 간 가장 큰 차이점은, 현실 속에서 수동적이던 존재가 소프트웨어 객체로 구현될 때는 능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객체의 부분적 특징 뿐만아니라 현실 객체가 가지지 못한 추가적인 능력도 보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의 전화기는 스스로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으며, 계좌는 스스로 금액을 이체할 수 없다.
이렇게 현실의 객체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특징을 의인화
라고 부른다. 일상적인 체계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반드시 인간 에이전트가 필요한 반면, 객체들은 그들 자신의 체계 안에서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에이전트다.
객체지향의 세계는 현실의 추상화가 아니다. 오히려 객체지향 세계는 현실 속의 객체보다 더 많은 특징과 능력을 보유한 객체들로 넘쳐난다.
은유
현실 세계와 객체지향 세계 사이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은유
다.
은유란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 한 가지 개념을 이용해 다른 개념을 서술하는 대화의 한 형태다. 그 본질은 한 종류의 사물을 다른 종류의 사물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있다.
현실 속의 객체의 의미 일부가 소프트웨어 객체로 전달되기 때문에 프로그램 내의 객체는 현실 속의 객체에 대한 은유다.
은유는 표현적 차이
또는 의미적 차이
라는 논점과 관련성이 깊다. 즉, 은유 관계에 있는 실제 객체의 이름을 소프트웨어 객체의 이름으로 사용하면 표현적 차이
를 줄여 소프트웨어의 구조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객체에 대한 현실 객체의 은유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경우, 표현적 차이를 줄일 수 있으며, 이해하기 쉽고 유지보수가 용이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객체지향 지침서에서는 현실 세계인 도메인에서 사용되는 이름을 객체에게 부여하라고 가이드하고 있다.
정리
- 객체지향 설계자로서 우리의 목적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고, 이상한 나라를 창조하는 것이다.
- 현실을 닮아야 한다는 어떤 제약이나 구속도 없다.
- 창조한 객체의 특성을 상기시킬 수 있다면 현실 속의 객체의 이름을 이용해 객체를 묘사해라.
- 아니면 그냥 깔끔하게 현실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라
느낀점
이번 장을 읽으면서 서비스 기업이 하나의 동작 중인 애플리케이션이고, 나는 하나의 독립된 객체라고 느꼈다.
면접관들은 애플리케이션의 설계자로서, 애플리케이션의 협력의 문맥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수행하는 객체를 발견하거나 창조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애플리케이션 안에서 어떤 객체가 어떤 행동을 수행하기를 원하느냐가 그 객체의 적합성을 결정한다.
애플리케이션이 필요로 하는 객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플리케이션 구동을 위해 다른 객체와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객체가 적합한지 결정하는 것은 객체의 상태가 아닌 행동이다.
즉, 권현수
라는 객체가 애플리케이션에 필요한 협력의 문맥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수행하여 애플리케이션 구동이라는 역할과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객체가 될 수 있다면, 그 애플리케이션이 필요로 하는 객체가 되는 것이다.